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계 프랑스인 (문단 편집) == 역사 == 프랑스와 러시아가 관계를 맺은 시기는 [[키예프 루스]]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키예프 공국 시절에 [[서프랑크 왕국]]과 교역을 한 때부터 관계를 맺게 되었다.] 키예프 공국이 몽골 제국에 의해 멸망한 이후 러시아와 프랑스 간의 교류가 크게 축소되었다. 이후 [[루스 차르국]]이 [[표트르 대제]] 치세에 서유럽의 문물들을 받아들이면서 본격적으로 프랑스와 교역 및 문화교류가 시작되었다. 이후 [[러시아 제국]]은 프랑스와 교역 및 무역을 하면서 당시 유럽 상류 계층의 공용어였던 [[프랑스/문화|프랑스의 문화]]까지 받아들였다. 프랑스인 교사들이 러시아 귀족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기 위해 초빙되고,[* 18세기말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 귀족들이 러시아 제국으로 이주했다.] 러시아 귀족들은 공문서 사용과 교회 예배 외 일상 생활에서 일부러 프랑스어만 쓰다시피 했다. 러시아 귀족들 중에는 요양이나 휴양으로 프랑스로 여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을 하면서 러시아 제국내에서 반프랑스 운동이 일어난 적도 있었으나, 파리에 진주한 러시아 제국 군대에 귀환한 이후 프랑스 문화를 전하고 반프랑스 운동 이전보다 프랑스 문화가 러시아 제국 내 깊이 침투했다. [[데카브리스트의 난|서구화를 주장하던 러시아 내 지식인들]]은 종종 러시아에서 정치범으로 몰리면 [[이반 투르게네프]] 처럼 프랑스로 망명하는 경우도 있었다. 19세기 기준으로는 프랑스에 폴란드인들이 러시아인보다 훨씬 더 많았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러시아인을 폴란드인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많았었다고 한다. 20세기에 러시아 제국이 [[러시아 혁명|혁명]]으로 몰락하자 러시아 귀족들은 대거 영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로 이주했다. 러시아 혁명과 [[적백내전]] 당시 프랑스로 망명한 러시아인들은 약 40만여 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프랑스를 거쳐 미국 등으로 다시 이주하였으나 프랑스에 정착한 인원은 10만여 명 정도에 달했다. 이들의 망명 과정에서 노르웨이의 탐험가 이자 외교관인 [[프리드쇼프 난센]]이 활약했으며 소련 수립 이후 망명한 경우 대부분 난센 비자를 받고 프랑스에 입국할 수 있었다 한다. 망명 러시아인 상당수는 본국에서는 귀족이었으나 프랑스에서는 일반 노동 계급과 다를 바 없는 처지로 무시를 당했다. 적백내전으로 망명한 러시아인 난민들의 러시아인 공동체의 권익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당시 러시아 망명 1세대는 기본적으로 소련이 지속되지 못할 것이며 자신들은 결국 러시아로 되돌아가게 되리라는 희망과 확신에 차서 살며 자녀들에게 러시아어 및 러시아 정교회 전례를 교육시켰으나... 2차대전 이후 소련이 초강대국이 되면서 이들의 바램도 좌절되었고, 결국 체념 상태에 빠진 러시아계 난민 상당수는 프랑스 사회 내에서 자신이 러시아인인 것을 숨긴 채 [[프랑스인]]들로 동화되어 살게 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인들이 프랑스로 이주했고, 21세기 들어서 푸틴의 독재를 피하기 위해 이주한 경우도 상당한 편이다. [[러시아/경제|러시아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러시아들 중에는 프랑스로 이주한 경우도 있다보니 프랑스 각지(특히 [[코트다쥐르]] 일대)에도 러시아 타운이 형성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